새정치민주연합이 기로에 섰다. 지난해 3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합당해서 새정치민주연합이란 긴 이름의 새 야당이 출범했을 때부터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마는, 이젠 정말 단일 대오로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을지조차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29일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를 거부하고 혁신전당대회 개최를 촉구한 건 사실상 문재인 대표에게 물러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총선을 불과 몇달 앞둔 제1야당의 앞날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참으로 딱하고 안타까운 풍경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국면에서도 드러났듯이 박근혜 정권의 퇴행에 실망한 국민들의 민주주의 요구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런 시기에 야당이 정권 견제세력으로, 그리고 대안세력으로 굳건히 서길 바라는 건 비단 야당 지지자들만의 바람은 아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내부 다툼에만 골몰해 이런 요구를 외면해왔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29일 기자회견 내용은 국민과 야당 지지자들의 기대를 벗어나는 또하나의 행동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총선 승리를 위해 ‘통합과 혁신’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안 전 대표 주장은 옳다. 그러나 그 방법이 꼭 새 전당대회여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현 지도부가 혁신에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애초 혁신위원장 자리를 거절한 건 안 전 대표 자신이다. 지금도 ‘문·안·박 연대’의 틀 안에선 혁신이 왜 불가능한 건지 많은 이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헌신과 희생은 하지 않고 주장과 요구만 하는 정치로는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문 대표 역시 기대에 못 미친 건 마찬가지다. 야당 대표로 뽑힌 뒤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당내 갈등을 치유하지 못한 일차적 책임은 문재인 대표에게 있다. ‘참 좋은 사람’이란 평가와 별개로, 폭압적 퇴행의 시대에 강력한 야당을 이끌 정치력을 문 대표가 갖췄는지엔 적지 않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게 현실이다. 대표직 포기까기 감수하면서 제안했던 ‘문·안·박 연대’가 거부당한 이상, 이제 문 대표의 대응과 선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안 전 대표의 대응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하나 평가할 만한 건 모호하고 추상적인 화법을 이번엔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 전 대표는 분명하게 ‘혁신전당대회 개최’와 자신도 대표직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문 대표는 “당내 의견을 수렴한 뒤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감정적인 즉답 대신에 당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 건 잘한 일이다. 문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당내 인사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서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어떤 결정이든 국민과 야당 지지자들의 바람을 중심에 놓고 숙고하고 판단해야 한다.
아울러 언제까지 문재인·안철수가 손을 잡느냐 마느냐에 야당의 미래를 맡겨놓아야 하느냐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안 전 대표 주장대로 혁신전당대회를 열더라도 ‘그 인물이 그 인물’이라면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현 야당의 지도체제를 완전히 새롭고 참신하게 꾸릴 방도는 없는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와 모색이 필요한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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