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일 새벽 내년도 예산안과 관광진흥법 등 5개 법안을 함께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또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은 정기국회 회기 중에, 노동 관련 법안은 12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예산안과 연계해서 여러 ‘논란 법안’들이 충분한 심의 없이 국회를 통과하거나 통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도, 이런 식으로 ‘논란 법안’들을 졸속 처리하기로 한 건 매우 잘못된 것이다. 논란이 많은 법안일수록 국회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심의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여야가 예산안과 함께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와 일부 대기업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를 받지 않고 학교 주변 200m 이내에 호텔이나 숙박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 또 경복궁 옆에 호텔을 건립하려는 대한항공의 숙원도 풀릴 수 있다.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법 개정이 절실하다는 업계의 요구를 감안하더라도, 예산안과 주고받기식으로 졸속 통과시킬 법안은 아니다.
뜬금없이 이 법이 예산안에 얹혀 황급히 처리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경제활성화법의 대표적 사례’로 관광진흥법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당인 새누리당은 서두른다고 쳐도,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마저 그에 발맞춰 국회 법제사법위도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이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정기국회에서 ‘합의 처리’하기로 한 것도 문제다.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야당 지도부는 말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인권침해 우려가 매우 큰 테러방지법까지 본회의 처리를 약속한 건 말이 되질 않는다. 현실적인 타협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통과시켜선 안 될 법안’까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정치적 협상을 하는 건 유연함이 아니라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몽매함일 뿐이다. 대통령 지시를 받은 여당이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그걸 다 받아준다면 야당의 설 자리는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논란 많은 법안은 예산안과 연계할 일이 아니다. 국회에서 신중하게 의견 수렴을 하고 논의하는 게 원칙이고 옳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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