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만 3~5살 무상보육) 지원비가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결국 내년 정부 예산에 한푼도 반영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전국 시·도 교육감 협의회가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내년 초에 ‘보육 대란’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많은 학부모가 무상보육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무상보육의 확대는 저출산의 장기화가 나라의 장래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에서 폭넓은 공감 속에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205명으로 15년째 초저출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합계출산율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국내총생산 대비 가족정책 관련 예산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다. 그럼에도 정부가 무상보육을 확대한다고 생색만 내놓고, 비용은 지방교육청에 떠넘기고 있다는 데 문제의 뿌리가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예산을 편성할 때도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해 집행하게 했다. 정부 예산에서는 이자 지원비로 333억원과 대체사업비 등으로 5064억원만 편성했다. 최근에는 아예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고쳐,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 의무지출경비로 못박았다.
시·도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올해에만 6조원 넘게 지방채를 발행해, 발행잔액이 11조원 가까이로 불어났다. 정부 요구대로 누리과정 예산을 집행하자니 다른 분야의 교육 예산을 줄여야 할 형편이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다. 2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 정부 예산에서 지방 교육청에 시설비 등 명목으로 3천억원을 우회 지원하기로 했다지만, 이것으론 2조1천억원에 이르는 경비는커녕 지방채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정부가 지방교육 재정을 늘려주기 전에는 누리과정 예산을 직접 책임지는 게 맞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여야가 예산안 합의를 11월 30일까지 마치지 못할 경우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것을 활용해, 누리과정 지원비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정부안을 밀어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5살 이하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어놓고 딴소리를 하고 있는 꼴이다. 보육 대란이 일어나면 이제 그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