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의 집회를 열어도 되느냐를 둘러싸고 이렇게 격렬하게 논란이 벌어진 것 자체가 현 정부 들어 진행되는 역사의 퇴행을 보여준다. 집회·시위는 헌법적 권리이며 정권이 함부로 금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법원의 판단을 통해 확인되고, 5일 예정대로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진통 끝에 열리는 집회인 만큼 그 의미를 잘 살려야 한다.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는 근래 보기 드문 대규모 집회였음에도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나’라는 본질적 질문보다 ‘왜 폭력이 행사됐나’라는 부차적인 문제가 부각됐다. 정부와 보수 언론이 쟁점 왜곡을 주도했고, 같은 연장선에서 경찰은 오늘 집회를 금지하려 온갖 술책을 다 썼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했고, 이제 다시 본질적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많은 시민이 광장으로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일방적인 국정 운영에 분노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며 밀어붙이는 노동5법 개정은 민주노총뿐 아니라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던 한국노총마저도 “노사정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훼손한 비정규직 확산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농민들은 쌀값 폭락 등으로 시름겨운 농촌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상경투쟁에 나섰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국민 여론에 눈과 귀를 닫은 불통 정책의 완결편이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이 집회에 참여한다.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봐야 정부가 꿈쩍도 하지 않으니 함께 모여 커다란 목소리를 내려는 것이다.
경찰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고 공권력의 폭력을 규탄하는 것도 이번 집회의 주요 목적이다. 공권력은 아무리 극악한 범법자를 다룰 때라도 그 생명과 신체를 함부로 해쳐선 안 되는 법인데, 생존권을 내걸고 시위하는 농민을 물대포로 직사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것은 공권력 남용을 넘어 살인미수에 해당하는 국가폭력이다. 정부는 사죄와 함께 관련자 처벌에 나서야 한다.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내는 시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평소 이들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반증이다. 평온한 주말의 일상을 포기하고 추위를 무릅쓴 채 집회·시위에 나서야 할 정도로 다급한 요구가 이들 마음속에 있다는 뜻이다. 오늘 정부가 주시해야 할 것은 사소한 불법시위의 꼬투리가 아니라 시민들을 겨울 광장으로 불러낸 그 다급함과 깊은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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