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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민주주의 가치 지켜낸 5일 평화시위

등록 2015-12-06 18:33

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5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그리고 폭력과 충돌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의 집요한 탄압에 맞서 민주주의와 집회·시위의 가치를 지켜낸 시민들의 승리였다.

정부는 이번 집회를 세 차례나 금지통고하면서 어떻게든 무산시키려 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의 함성을 듣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11월14일 민중총궐기 때의 일부 폭력사태를 내세워 ‘대규모 집회=폭력 불가피’라는 비합리적인 논리를 퍼뜨렸고, 박근혜 대통령은 심지어 시위대를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면서 복면금지법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집회 주최 쪽과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등이 합심해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약속하고 마침내 법원도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명분과 법리에서 이미 정부가 패배한 셈이었다.

실제 집회의 모습은 시민정신의 승리를 더욱 또렷이 보여줬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가 모였음에도 폭력사태는커녕 시종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로 집회와 도심 행진이 진행됐다. 시민들은 각양각색의 가면을 쓰고 나와 복면금지법으로 상징되는 표현의 자유 탄압을 풍자하고 조롱했다. 함께 모여 길을 따라 걸으며 저마다 원하는 바를 외치는 집회·시위 본연의 모습 그대로였다. 질서유지선은 지켜졌고, 경찰도 무장을 풀고 시위대를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집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앵무새처럼 ‘폭력 엄단’을 외치던 정부와 일부 보수 진영의 입이 무색해졌다.

만약 이번 집회가 경찰의 방침대로 원천봉쇄됐거나 ‘금지 대 강행’의 충돌 양상을 빚었다면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도 또 한번 톡톡히 망신을 샀을 게 분명하다. 민중총궐기가 과잉진압되는 과정에서 농민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뒤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 상황에 대해 외국 언론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번 집회 현장에서도 외신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와 집회·시위 탄압 등으로 국격을 갉아먹는 반면 시민들이 이에 맞섬으로써 나라의 위신을 그나마 지켜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정권이 한번 선출됐다고 해서 제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끊임없이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바로 이 때문에 집회·시위의 자유가 소중한 것이다. 집회·시위를 ‘허가’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모두 독재체제에 뿌리를 둔 태도다. 겉으로는 집회·시위의 폭력성을 부각시키지만 내심으로는 평화적인 집회·시위까지 부정하려 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이번 범국민대회를 계기로 민주주의와 집회·시위의 의미를 성찰하고, 저토록 많은 시민이 추위에 떨며 광장으로 나선 이유를 살피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더욱더 정치적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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