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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될 ‘감정노동자’ 현실

등록 2015-12-06 18:34

국내 유통업 종사자의 절반가량이 감정노동 위험군에 속한다는 조사 결과는 국내 감정노동자가 처한 심각한 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서울시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위해 설립한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유통업 종사 노동자 125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6일 발표한 ‘유통산업 감정노동 연구’ 보고서에서 거듭 확인된 사실이다. 조사에 응한 노동자들은 고객응대 부담의 과부하와 감정 부조화, 조직의 감시와 모니터링의 고통을 너도나도 호소했다. 특히 여성일수록 감정노동에 따른 고통을 더 많이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3년 미국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가 처음 사용한 감정노동이란 단어는, 실제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숨기고 정해진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의 상황을 잘 표현해준다. 늘 웃는 얼굴로 고객을 맞아야 하는 서비스업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감정노동 문제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른 지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한국형 감정노동평가도구를 개발한 배경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려는 의도에서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해 등장하는 일부 고객의 삐뚤어진 ‘갑질’ 행태도 감정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비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여전히 더딘 편이다. 지난달 초 정부가 산업재해보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적응장애와 우울병 등을 추가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재계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서다. 재계는 과연 일을 하다 생긴 질병인지 인과관계가 불명확할뿐더러 산재보험료 인상 등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을 늘린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재계의 움직임은 근시안적 태도의 전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감정노동자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단지 일부 ‘갑질 고객’의 잘못 탓으로만 돌리는 건 결코 옳은 처방이 아니다. 기업 스스로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려는 노력이 앞서야만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비로소 열린다. 국내 감정노동자는 800만명으로 추산된다. 무릎 꿇고, 매 맞고, 욕설 듣는 노동자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결국엔 기업 경쟁력마저 갉아먹을 수밖에 없음을 기업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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