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폐지를 4년 미루자는 법무부의 입장 발표 뒤 법조계와 그 주변이 온통 들끓고 있다. 10일엔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고시생 등과 사시 폐지를 주장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이 각각 국회 앞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경쟁적으로 국회와 법원, 교육부를 찾아 압박하는 모습도 계속됐다. 로스쿨 학생들이 시험을 거부하고 집단 자퇴서를 내자, 반대쪽에선 삭발로 맞선다. 이성적 토론 대신 감정적 충돌만 격화하고 있다. 법조계를 두 쪽으로 갈라놓은 데 이어 이제는 국민 여론도 양분되는 양상이다. 대체 누가 이런 평지풍파를 만들어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는가.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삼가온 법무부가 왜 느닷없이 사시 폐지 유예 입장을 밝혔는지를 두고선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사시 폐지 시점까지 법으로 정해둔 터에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이를 뒤엎으려 한다면 그 순간 엄청난 분란이 폭발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고쳐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향은 입법권자인 국회가 정할 몫이고, 그에 앞서 대법원과 법학교육계 등 법조의 각 영역과 사회 일반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상식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법무부가 국회와 대법원은 물론 교육부와도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발표 몇십분 전의 일방적 통보만으로 사시 폐지 유예 입장을 밝혔다. 도를 한참 넘은 월권이요, 과잉이다.
법무부가 내세운 ‘여론’이란 것도, 사시의 긍정적인 면과 로스쿨의 부정적인 면을 대놓고 부각해 응답자를 한쪽으로 유도하는 편향된 설문조사의 결과였다. 결론에 꿰맞추려는 뻔한 무리수다. 그래 놓고선 논란이 커지자 하루 만에 ‘계속 검토해 최종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렇게 애초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라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고, 무엇엔가 등 떠밀려 벌인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분명히 철회해 혼란 수습을 앞당겨야 한다.
거듭 밝힌 대로, 지금의 로스쿨에 문제점이 많다고 해서 사시 존치가 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로스쿨 제도는 사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오랜 사회적 논의를 거쳐 마련된 것이다. 사시 폐지도 그런 합의의 일부분이다. 지금 와서 이를 번복한다면 사시의 폐단에 더해 로스쿨 제도까지 기형적으로 뒤틀리게 된다. 그리되면 폐단은 몇 배 더 커진다. 그런 상황을 막을 책임이 정부에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