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은 내년 4월 총선의 예비후보 등록일이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이 끝나질 않아 상당수 지역구에서 예비후보들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선거구가 어떻게 정해질지 모르기에 자칫하면 엉뚱한 곳에서 표밭갈이를 시작할 수 있다. 더구나 헌법재판소가 선거법 개정 시한으로 정한 올해 12월31일까지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하면 기존 선거구는 모두 무효가 되고 예비후보자의 법적 자격도 사라져 버린다. 현역 의원들이야 의정보고회 등의 명목으로 활동할 수 있겠지만, 새로 선거에 도전하는 예비후보들은 합법적인 활동을 아예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기상천외한 상황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국회의 선거구 획정 협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여야 지도부가 몇 차례 만났지만 합의엔 실패했다. 정치적 이해가 엇갈린 측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제1당인 새누리당이 자당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보한 방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탓이 크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15일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특단의 조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여야 모두 심각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다. 현역 의원들이야 아쉬울 게 없어서 그런가. 배짱도 이런 배짱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투표가치의 평등을 내세워 기존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3 대 1에서 2 대 1로 조정하라고 결정한 게 지난해 이맘때다. 그 뒤 1년 동안 선거구 획정작업은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이리저리 흔들렸고, 이미 개편 취지는 누더기가 된 지 오래다. 농어촌 국회의원들의 집단 반발로 선거구 인구편차 조정이란 애초 취지는 퇴색했고,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한다는 학계·시민단체 주장과 정반대로 여야는 비례대표 숫자를 오히려 줄여버렸다. 그런데도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단 한 석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새누리당의 고집 때문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병석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새누리당)이 낸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지만 새누리당은 이마저 거부하고 있다. 득표율에 비해 의석수가 적은 제3당에 상대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어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에 불리하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거나 엇비슷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반대할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출신인 정의화 의장이 “새누리당이 과하다. 거대 여당으로 너무 당리에 치우친 게 아니냐”고 쓴소리를 했겠는가. 새누리당은 명분 없는 고집을 지금이라도 꺾는 게 옳다. 원내 제1당으로서 미증유의 선거구 혼란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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