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남북이 통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일이 비용에 견줘 장기적으로 얻을 게 훨씬 많다는 걸 부정하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앞서 투입할 수밖에 없는 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느냐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이를 깊게 다룬 통일비용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남북간 교류협력을 확대함으로써 통일비용을 많게는 2500조원가량 줄일 수 있다는 게 요지인데,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산정책처는 10년 뒤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한다고 가정하고, 그 뒤 북한의 1인당 소득이 남한의 3분의 2 수준으로 높아지는 시점까지 드는 비용을 추산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지금처럼 제한적 교류협력만 할 경우 통일비용이 4822조원 드는데, 식량·의료·농업개발 지원 등 적극적 의미의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면 3100조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도로·철도 투자, 북한 경제특구 개발 참여, 개성공단 확대 등 경제적 투자까지 활성화하면 비용이 2316조원으로 더 많이 줄어든다고 봤다. 북한의 1인당 소득이 남한의 3분의 2 수준으로 높아지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시나리오에 따라 50년, 39년, 34년으로 짧아진다고 분석했다.
예산정책처의 분석 결과는 그동안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 다수가 갑작스런 통일보다는 교류협력을 하면서 일정 기간 공존상태를 유지하는 쪽을 지지한 것이 합리적인 판단임을 보여준다. 갑작스레 통일이 이뤄지고 그 비용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한다면, 통일은 많은 이들에게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이란 말을 꺼내들었고, 그 뒤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결’로 일관하는 양상이다.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민심이 이반되고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판단이 이런 발언과 정책의 뿌리에 깔려 있을 것이다. 정부가 지난 몇 년간 남북 긴장 완화나 교류협력 확대를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겠다. 그 결과 남북간 군사적 긴장은 좀체 완화되지 않았고, 국방예산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등 ‘분단 비용’만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에도 북한 권력 교체기에 붕괴론이 나왔지만 모두 빗나갔다. 합리적 예측이 아닌 막연한 기대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4년을 거의 채워가는 김정은 정권이 안착하고 있다는 평가도 늘고 있다. ‘대박론’이 아니라 이런 현실을 직시한 위에서 통일정책을 세워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