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심 법안’의 통과를 위한 청와대·여당의 국회의장 압박이 도를 넘어섰다. 새누리당 지도부에 이어 15일엔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접 국회의장에게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삼권분립 원칙은 깡그리 무시한 채 ‘국가비상사태니 무조건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윽박지르는 청와대와 일부 ‘친박’ 의원들의 행태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특히 여당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을 국민이 뽑은 헌법기관이 아닌, 대통령 비위나 맞추는 시종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노동 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테러방지법 등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해달라는 새누리당 요구를 정의화 국회의장이 거부한 것은 너무 당연한 처사다. 현행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각 교섭단체대표가 합의하는 경우에만 직권상정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야당이 입법에 반대하는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라고 우기며 직권상정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억지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이 입법 거부하는 게 비상사태가 아니면 어떤 게 비상사태냐? 언제 테러가 날지 모르는데 테러방지법을 입법 안 하는 건 국회의장의 직무유기”라고 맹비난했다. 그런 논리라면 북한과 24시간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는 대한민국은 항상 계엄령 상태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실제로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선 그런 논리로 국민 기본권을 억압했고, 유신도 긴급조치도 했다. 위수령이나 계엄령을 선포하기도 했다.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행태는 과거 군사독재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모를 정도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연내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선거법만은 직권상정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청와대와 여당이 “국회의원들 밥그릇 걸린 법만 먼저 통과시키느냐”며 결사반대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12월31일까지 선거구 재획정을 하지 않으면 모든 국회의원 선거구가 무효가 되는 사상 초유의 대혼란이 벌어진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언급한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여야가 그 전에 선거구 재획정을 담은 선거법을 타결하면 된다.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입법부 수장의 말꼬리를 잡아 공격하는 게 정부여당의 온당한 처사인지 한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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