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노동 5법과 경제활성화 법안 등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위해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한 대대적인 압박작전에 나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6일 정 의장의 직권상정 거부에 반발해 긴급재정명령 검토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박정희 정권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발동의 망령이 현실로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헌법 76조 1항은 긴급명령권의 요건을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라고 규정해 놓고 있다. 지금 나라에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난 것이 아님은 천하가 아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분열로 기능이 완전 불능 상태여서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턱없는 억지다. 야당이 내홍에 빠진 것을 국가비상사태라고 한다면, 그동안 여당이 숱하게 내홍에 빠진 것은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가.
직권상정이 천부당만부당한 이유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었다. 정 의장은 “지금의 경제상황을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있는지 동의할 수 없다”며 “초법적 발상은 오히려 나라에 혼란을 가져오고 경제를 나쁘게 할 수 있는 반작용이 있다”고 경고했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입법부 수장이 한 말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상식을 외면한 채 초법적 발상의 억지 논리만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노동시장구조개편법안 등 쟁점 법안의 국회 처리를 다그치면서 이런 법안들의 처리를 “국민이 바라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법안 앞에 ‘쟁점’이라는 말이 붙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법안들이 온 국민의 박수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박 대통령이 더 잘 알 것이다. 노동법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만 해도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해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기간제법과 파견제법 개정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릴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모든 사안을 흑백과 선악으로 나누어 자신은 언제나 백이고 선이라는 식이다. 이러다가는 ‘국민이 바라는 일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겠다’고 나서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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