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세제를 통한 지원과 각종 보조금으로 수출 대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도해 경제성장을 이끌던 우리나라의 경제운용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경기는 몇 년째 활기가 없다. 부실·한계기업이 속출하고 가계 빚이 급증하는 등 경제에 그림자가 짙다. 독점 보호장치를 걷어내고 경쟁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유도하고, 가계 소득을 늘려 민간소비를 살리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그러나 정부가 16일 발표한 내년 경제정책 방향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연기금의 대체투자를 큰 폭으로 늘리는 등 어떻게든 성장률 수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뜻만 선명하다. 선심성으로 보이는 규제완화 계획도 있다. 내년 4월 총선과 내후년 말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낡은 성장정책만 펴다가 우리 경제가 제대로 회복할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부는 올해 지난해보다 48조원이나 많은 예산을 썼다.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렸다. 다음 세대에게 빚을 지우고 거액을 앞당겨 썼음에도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의 3.3%보다 훨씬 떨어진 2.7%가량이다. 수출과 민간소비는 함께 부진했으나, 설비·건설투자가 크게 늘어 간신히 성장률을 떠받쳤다. 정부는 내년에는 수출과 민간소비도 조금 좋아져 3.1%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너무 낙관적이지 않으냐는 지적에도 ‘3%는 넘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인데, 여전히 성장률을 가장 중시하는 사고가 묻어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은행과 물가안정목표를 재설정한 일이다. 내년부터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가 되게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설명 책임’을 진다. 석유값이 큰 폭으로 떨어져 물가상승률이 낮은 터라 무리한 적용은 부작용이 클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를 밑돌지만, 석유류와 식료품을 빼고 보면 2%를 크게 웃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상(명목) 성장률을 강조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낮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한국은행이 물가목표에 맞춰 무리하게 통화를 완화하면 달러값이 올라 수출기업에는 좋다. 반면 가계는 물가 상승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세계 금융시장에 변동성이 커질 게 뻔한 내년에 통화정책 결정에서 최우선 고려할 것은 금융 안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가 내년에 수도권 규제를 일부 풀기로 한 것은 경제 상황보다는 선거를 더 마음에 둔 결정으로 보인다. 정부는 수도권 동북부 지역과 접경지역의 낙후한 곳을 골라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또 10만 헥타르에 이르는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거나 행위 제한을 완화하기로 했다. 큰 특혜가 되는 토지이용 규제 완화는 이유가 타당해야 한다. 특히 수도권 규제 완화는 지역 균형 발전을 해칠 가능성이 크므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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