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18일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의화 의장은 이만섭 전 국회의장 영결식에서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흔들리는 작금의 상황에서 의장님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인다”고 이 전 의장을 추모했다. 비록 영결사란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도 넘은 언행에 대한 국회의장의 생각을 읽기엔 충분하다. 어쩌다가 여당 출신 국회의장이 이런 발언을 하는 지경까지 온 건지, 답답하고 안타깝다.
입법부 수장이 공개석상에서 삼권분립의 훼손을 걱정해야 할 만큼 민주주의 정치체계를 어지럽힌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의민주주의 기관이자 행정부를 비판·견제할 책임이 있는 국회를 격한 어조로 비난해왔다.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한다. 위선이라 생각한다” “국회가 국민과 민생을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 등등 국회를 하부기관쯤으로 여기는 투였다.
대통령이 그러니 청와대 참모들도 국회 알기를 우습게 안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국회의장 면전에서 ‘국회가 밥그릇이나 챙긴다’며 탈법적인 법안 직권상정을 요구했고, 비서관급인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조차 “비정상적 국회 상태를 정상화할 책무가 (정 의장에게) 있다”고 입법부 수장을 직접 겨냥했다. 요즘 청와대가 국회에 하는 행태를 보면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고, 왕정도 이런 식의 절대왕정이 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삼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의 일부 국회의원은 오히려 청와대에 편승해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국회에 입법권을 주고 행정부를 견제하라고 한 건, 무엇보다 대통령이 절대권력의 제왕이 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게 바로 민주적 정치체제의 기본이다.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흔들린다’는 국회의장의 탄식을 보면서,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새누리당의 일부 ‘친박’ 의원들은 정의화 국회의장의 발언을 심각하게 되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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