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등 전국에서 열린 제3차 ‘민중총궐기대회’가 경찰과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 그런데도 경찰은 ‘문화제’가 정치성 집회로 변질했다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주최 쪽과 주요 가담자를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이가 없다’. 평화롭게 끝난 행사까지 경찰이 수사하겠다는 것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다. 도대체 정권의 퇴행이 어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려는 건지 아찔하다.
경찰은 ‘문화제’로 장소 사용 허가를 받고 진행한 대회가 실제로는 ‘정치성 구호와 발언이 난무한 미신고 불법집회’였다는 걸 사법처리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이는 헌법상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매우 협소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현행 집시법에 옥외집회는 신고를 하도록 규정돼 있긴 하지만, 이는 집회·시위를 제약하기 위한 게 아니라 시민 안전이나 교통대책 마련 등을 위한 취지에서다. 공공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그게 집회든 시위든 문화제든 전적으로 자유를 보장하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그나마 옥외집회 신고를 규정한 집시법 제6조는 헌법재판소에서 5 대 4로 간신히 합헌 결정을 받았을 정도로 논란에 휩싸인 조항이다.
따라서 ‘불법집회’ 또는 ‘불법시위’란 말 자체가 원칙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모든 집회·시위는 허용되는 게 마땅하며, 다만 그 과정에서 폭력 등의 행위가 발생했다면 그에 대해서만 법에 따라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정치 구호가 나왔다는 이유로 문화제를 ‘미신고 불법집회’로 규정해 다수의 참가자를 사법처리하겠다는 발상은 극단적인 통제사회를 다룬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해괴한 장면이다. 정치 구호가 나왔다고 ‘불법집회’로 규정한다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유명 배우가 정치성 발언을 하는 순간 그 영화제 또한 ‘불법집회’로 경찰의 수사 대상이 돼야 마땅할 것이다. 영화제를 지켜본 수많은 관객과 시청자 역시 졸지에 불법집회의 참가자로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선 그게 현실이 되고 있다. 각종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미 국제사회 비판에 직면한 현 정권은 또다시 우스꽝스런 행동으로 망신을 자초할 셈인가. 경찰은 민중대회의 사법처리 방침을 즉각 포기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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