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전 대법관이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대신 서울의 접전 지역구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한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험지 출마’ 권유를 고심 끝에 받아들이는 희생과 결단의 모양새다. 야당 강세 지역에서 당선되면 정치적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계산도 하는 듯하다. 이런저런 정치적 기대로 사뭇 고무된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그렇게 해도 될 사람인지는 의문이다. 지난 몇 해 동안의 일을 떠올린다면, 지금 그의 모습은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험지론’ 따위를 말할 계제가 아니라 출마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그는 전직 대법관이다. 대법관은 그 어느 직책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렴성, 그리고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사법부의 독립은 대법원의 판결 하나하나와 대법관의 행동 하나하나로 확인되고, 또 영향을 받는다. 이는 퇴임 뒤에도 마찬가지다. 안 전 대법관은 2012년 퇴임한 지 48일 만에 새누리당의 특위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퇴임사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여당, 그것도 선거를 목전에 둔 대통령 후보의 캠프로 직행한 것이다. 그런 처신으로 재판과 판결의 공정성은 크게 의심받게 됐고 사법불신은 더 커졌다. 그렇게 사법부 전체를 망신시키더니 지금 또다시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자리를 탐하고 있다. 법원 판결을 두고 ‘나중에 정치권력의 점지를 받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는 손가락질은 이로써 더 심해질 것이다. 자신도 비루할뿐더러 동료 법조인들을 함께 욕보이는 일이다.
그는 이미 몸을 더럽힌 터다. 2014년 총리 후보로 지명됐을 때, 그가 대법관 퇴임 뒤 변호사로 활동하며 벌어들인 수익이 5개월 사이에 16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청렴·강직이라는 검사나 대법관 시절의 이미지와 달리 공직 경력을 돈벌이에 이용한 부도덕한 사람이란 실망감이 확산하면서, 그는 지명 엿새 만에 총리 후보를 사퇴했다. 전직 대법관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이로써 땅에 떨어졌다.
이번 출마는 그렇게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는 것일 수 있겠다. 이왕 정치에 뛰어들었으니 더 큰 권력에 다가서려는 개인적 욕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오점을 세탁하고 면죄받는 통과의례일 수는 없다. 사법불신을 가중시킨 책임도 아직 다 갚지 않았다. 그의 행보가 부박하고 그악스럽게 보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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