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30일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이른바 ‘양대 지침’의 정부안(초안)을 공개했다. 9월15일 이뤄진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관한 노사정 합의’에서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를 가이드라인(지침) 형태로 명확히 하기로 한 데 따른 후속조처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현행 근로기준법 규정 탓에 일선 현장에선 분쟁이 잇따를뿐더러 일일이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등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지적에도 타당한 구석이 없지는 않다. 이번 기회에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게 노사 모두에 도움을 준다는 정부의 생각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이날 정부가 내놓은 안을 들여다보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투성이다. ‘업무능력의 결여’를 해고 사유의 하나로 명시적으로 인정해, 이른바 저성과자 해고의 길을 확실하게 열어준 게 대표적이다. 정부안은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타당성’을 지닌다면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취업규칙 변경도 가능하도록 했다. 불이익의 정도, 충분한 협의 노력 등 구체적인 요건을 달았다고는 하나, 균형추가 사용자 쪽으로 더 기울게 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가이드라인을 공개하기까지 정부가 보인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노사정이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합의했음에도, 그간 얼마만큼 진지하고 충분하게 협의에 나섰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노사정 합의 이후 석달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토론이나 대화 노력도 기울이지 않다가 2015년을 이틀 남기고 불쑥 전문가 좌담회라는 형식을 빌려 정부안을 들이밀듯 공개하는 처사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연내 처리’라고 시한을 못박아둔 채 밀어붙이기에 나서는 ‘박근혜 노동개혁’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선 희망퇴직이란 이름을 내건 사실상의 정리해고가 넘쳐난다. 정부안은 징계해고, 정리해고에 이어 이제 저성과자 해고라는 또 하나의 ‘손쉬운 해고’ 카드마저 손에 쥐었다는 신호를 기업들 머릿속에 심어주기 십상이다. 어차피 구속력도 없는 가이드라인 제정에 속도전 치르듯 목매단 이 정부가 과연 기업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직무 및 성과 평가나 충분한 해고회피 노력 등의 전제조건을 지키고 있는지나 제대로 감시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