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개선’을 강조하는 내용의 신년사를 내놨다. ‘핵’이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안정적인 대외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년사는 5월로 예정된 노동당 7차 당대회 때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당은) 인민 생활 문제를 천만 가지 국사 가운데 제일 국사로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 5년차를 맞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경제적 성과와 성공적인 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선군’과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줄고 대신 ‘노동당’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노선은 북한 체제의 ‘정상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이다.
신년사는 “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새로운 제안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먼저 판을 깨지는 않되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얘기다. 물론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대 원칙’과 6·15 공동선언 및 10·4 정상선언에 대한 존중 요구도 빼놓지 않았다. 정부는 이에 대해 “남북 사이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평화통일의 한반도 시대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남북 당국의 이런 모습은 모두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없는 말에 그친다는 점에서 미흡하다. 남북은 8·25 합의에 따른 지난달 1차 당국회담이 결렬된 이후 서로 책임을 상대에 돌리는 행태를 보인다. 특히 북쪽에 비해 훨씬 많은 협상자원을 갖고 있는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3일 제안이 주목된다. 그는 “한국의 다양한 무역거래선을 활용해 북한산 물품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도록 중개무역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북한은 이미 민간시장인 장마당이 수백개에 이르는 등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북한의 신년사에서 젊은이들의 역할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것도 이른바 ‘장마당 세대’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정부는 경제계의 이런 시각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얼마 전부터 평화통일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막연한 통일론이 아니라 남북 관계 진전과 평화 구축 노력이다. 남북 당국의 구체적인 실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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