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 궁터인 월성 복원 사업을 두고 ‘복원을 위한 난장판’이라는 거센 비판의 소리가 들린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만큼 무엇보다 발굴·복원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한데도 발굴 작업이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한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유적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경주에서 유사한 사례가 이미 벌어졌다. 지금 황룡사역사문화관 건물이 들어선 터에서 2010년 신라시대 연못 터가 발굴됐다. 연못 유적이 몇 안 되는데다 처음 확인되는 장방형 연못이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이런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채 2013년 건물 공사에 들어갔다. 그나마 애초에는 쉽게 걷어낼 수 있는 가건물로 짓겠다고 했다가 콘크리트 건물로 재승인을 받았다. 연못 유적을 콘크리트로 덮은 ‘역사문화관’이라니 이런 역설이 또 없다. 유적의 참된 복원·보존보다는 가시적 성과를 우선시한 토건주의 행정이 빚은 참극이다.
월성 발굴에서도 이런 과오가 되풀이될 조짐이 보인다. 경주시가 10년 안에 복원을 끝낸다는 속성 목표를 세운 가운데 한겨울에는 발굴을 쉬는 상식을 어겨가며 ‘속도전’을 펴고, 인력의 한계를 넘어 발굴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출토되는 유물과 유적을 면밀히 조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유적은 한번 망가지면 영원히 잃게 된다. 오죽하면 발굴 관계자한테서 “유적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을까 싶어 두렵다”는 말까지 나올까.
이런 사태의 배경은 정부와 경주시의 이해관계와 성과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월성 발굴 현장을 찾아 “인력이나 예산을 최대한 투입해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추진했던 월성 발굴을 대선 공약으로 삼는 등 관심을 보여왔다. 경주시로서는 현 정부에서 최대한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더욱 속도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8세기 왕성 터인 헤이조쿄 유적은 50~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이고 치밀한 발굴·복원으로 유명하다. 1950년대에 발굴조사가 본격화됐는데 현재 40% 정도를 마쳤을 뿐이라고 한다. 고고학의 시간은 이처럼 유장한 것이다. 하물며 정권 단위의 단기적 시야에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시급한 현안도 많은데 오히려 천천히 가야 할 일에 괜한 채찍질을 할 때가 아니다. 학계의 걱정에 귀를 기울여 발굴·복원 계획의 기본부터 다시 점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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