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보육대란’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정부는 ‘나 몰라라’ 하며 책임 떠넘기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 대화를 하자는 교육감들의 요청에는 귀를 닫은 채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를 법적 대응만 되뇌고 있으니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5일 ‘누리과정 예산 편성 촉구 담화문’을 내어 검찰 고발까지 거론하며 교육감들을 압박했다. “내년 지방교육재정 여건을 들여다보면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전액 편성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한 교육청은 단 한 곳도 없다. 현재 논란의 대상인 7개 교육청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교육청도 적게는 두 달치밖에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등 예산 미확보 상태인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최 부총리의 논리대로라면 전국의 모든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의지’가 없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만 봐도 교육청의 재정 여건이 충분하다는 정부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누리과정 사태는 한마디로 정부가 추가 지원 없이 교육청에 생짜로 수조원의 지출 항목을 떠넘긴 것이다. 결국 교육청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 교육에 써야 할 다른 예산을 깎거나 이미 한계에 다다른 빚을 또 내는 것뿐이다. 그게 옳지 않다고 판단한 교육감들은 예산을 편성하지 않음으로써 정부에 항의하는 길을 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했던 ‘0~5세 보육 국가완전책임제 실현’이란 게 이런 상황을 지칭한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진실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경향신문>여론조사를 보면 ‘누리과정 예산을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이 52.2%로 절반을 넘은 반면, ‘시·도교육청에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응답은 27.8%에 그쳤다. 세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정부 책임을 묻는 응답이 더 많았다.
정부가 대법원 제소니 검찰 고발이니 들먹이는 건 아무런 의미 없는 공갈·협박에 불과하다. 교육감들의 반발만 살 뿐인데다 설사 법적 조처를 취하더라도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른다. 그때까지 보육대란이 멈춰줄 리 없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6일 정부·여당에 긴급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정부·여당은 이제라도 대화에 나섬으로써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