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11일 열렸다. 서면 답변과 청문회 답변을 들어보니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낙관적 전망만 늘어놓았다가 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치자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재정적자만 키우고,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가계부채를 크게 늘린 최경환 부총리 시절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뜻이 선명했다. 기존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경제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는데도, 옛 모범답안지를 그대로 읽는 듯한 모습에서는 경제정책 수장으로서 긴장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미 올해 정부 예산이 확정되고, 경제정책 방향까지 발표가 끝난 마당에 후임자가 틀을 크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박근혜 정부 남은 임기 2년을 책임질 경제부총리라면, 기존 정책이 놓치고 있는 것을 포착하고 이를 개선할 혜안과 의지 정도는 보여달라는 게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유 후보자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지 않고도 올해 3.1%의 실질 성장률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1분기 소비 위축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계경제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고, 민간 연구소들은 성장률이 3%를 크게 밑돌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적절한 정책의 기반인데, 전임자들처럼 낙관론만 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핵심 경제정책 기조인 ‘4대 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가운데 최대 쟁점인 노동시장 개편에 대한 언급이 합리적 설득보다 강요에 가깝다는 점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유 후보자는 임금 비용이 줄어드는 데서 생기는 해당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경제 전반의 활력 향상을 혼돈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으로 늘어난 일자리가 시간제 비정규직에 집중돼 있고, 노동시장 개편이 일자리 질을 악화시켜 소비 침체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듯하다. “집값이 안정적으로 상승해야 전세 공급이 늘어나 전셋값이 안정된다”는 청문회 답변에선 가계의 주거비 부담 급증이나, 가계 부채 급증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도덕성 문제도 있지만 결국 국회에서 유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유 후보자가 앞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큰 실책은 피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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