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 집단인 동교동계의 권노갑 전 의원 등이 12일 더불어민주당을 집단 탈당했다. 기본적으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정치권 이합집산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역행적인 집권세력의 독주를 견제하는 강한 야당이 절실한 판에 민주화 세력의 주축임을 자임해온 동교동계가 지역주의에 편승한 이기주의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지금 몸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탈당을 했겠지만, ‘동교동계가 곧 민주화의 적통’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는 퇴색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권노갑 전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했지만, 당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평생을 민주주의와 국민통합을 위해 애써온 김대중 전 대통령 유지를 받든다면서, 그가 세우고 키워온 제1야당을 떠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잘 와닿지 않는다. 야권의 지지부진한 상황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의 반발에 민감한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렇다.
엄혹한 시대에 군부독재와 싸우며 야당의 맥을 이어온 동교동계의 업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선 1998년 2월 김대중 정권의 탄생과 함께 동교동계의 정치적 역할은 사실상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시점에 다시 동교동계의 움직임이 화제가 되는 것 자체가 야당 리더십의 부재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비극이다. 그 책임은 지금 야당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 모두의 몫이다. 야권 지지기반의 양대 축인 수도권 개혁세력과 호남의 분리 현상이 점점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권노갑 전 의원을 비롯한 동교동계를 끌어안지 못하고 끝내 나가도록 한 데는 제1야당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표의 책임이 누구보다도 크다. 동교동계뿐 아니라 호남과 수도권 의원들의 탈당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문 대표가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증거다.
그렇다고 동교동계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을 혼자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권노갑씨 등이 당을 떠난다고 해서 제1야당이 김 전 대통령의 정신과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물리적으로 가까웠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정신과 정책을 누가 잘 구현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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