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의 배임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법원을 11일 강하게 비난했다. 검찰이 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다면 상급심 법정에서 다투는 게 정도다. 그런데 이를 지휘해야 할 검사장이 되레 기자회견을 자처해 공개적으로 법원을 비판했다. 전례 없는 일일뿐더러, 사법제도의 안정과 신뢰를 위협하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다.
1심 법원이 강 전 사장의 배임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검찰이 혐의를 제대로 입증해내지 못한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성과도 없는 ‘자원외교’에 나랏돈 수십조원을 날렸고,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인수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 법적 책임을 철저한 수사와 치밀한 증거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 검찰이 할 일이다. 하지만 검찰은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등 정권 차원의 개입이나 지시 여부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채 어물쩍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다 보니 강 전 사장의 배임 혐의를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수준인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이 지검장은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는데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정작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소리만 요란했지 결과는 빈약한 검찰 수사였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하베스트 인수 당시 손해가 예상됐는지, 개인적 이익 따위 부정한 동기로 거래를 강행했는지 등 배임죄 성립의 핵심 요소를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했다. 그러고서 법원 탓만 하니 꼴불견이다.
이 지검장은 “검찰이 국민의 이름으로 기소했는데…”라는 말도 했다. ‘국민’을 내세우는 것은 정치인들의 수사로나 어울린다. 이번 기자회견이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5일 국무회의 발언 뒤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막강한 수사력을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장이 권력의 심중을 헤아려 정치적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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