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국회의원 선거구가 모두 사라져버린 사상 초유의 상황이 14일째 이어지고 있다. 20대 총선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이런 기막힌 상황은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4월13일로 예정된 총선을 연기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겠는가.
선거구 공백으로 예비후보 등록이 불가능한 상태가 장기화하자, 중앙선관위는 11일 예외적으로 예비후보 등록과 선거운동을 당분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법적 근거가 없는 임시조처에 불과하다. 이렇게라도 해서 현역 의원과 선거운동 기회를 원천 봉쇄당한 정치 신인의 불평등을 보완하겠다는 취지인데, 그렇다고 선거의 기본인 ‘평등과 비례’ 원칙의 훼손을 막을 수는 없다.
이젠 ‘총선을 한 달 연기하자’는 말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만약 총선에서 정치 신인이 현역 의원에게 극히 미미한 표차로 졌을 경우 “선거운동 기회를 봉쇄당했기 때문에 졌다”고 소송을 내는 사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기에 그런 주장이 나온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일축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뭘 했는지 무겁게 반성해야 마땅하다.
더욱 심각한 건, 여야 모두 시급하게 지금의 입법 비상사태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구 획정과 대통령 관심 법안의 연계를 풀지 않아 선거법 협상을 난항에 빠뜨린 건 바로 여당이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원유철 원내대표는 12일부터 6박7일 일정으로 과테말라를 방문 중이다. 대통령 특사 자격이라는데 이런 비상상황에 여당 원내대표를 특사로 보내는 발상이 어이없다. 야당도 이 지경까지 상황이 악화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부의 복잡한 이합집산 탓에 야당이 선거구 획정에 힘을 쏟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손 놓고 2월까지 선거구 공백 상태를 지속한다면 그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을 정치권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지 묻고 싶다. 선거는 의회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인데, 선거구 획정조차 하지 못하는 국회라면 도대체 왜 존재하냐는 근본적 의문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는 오늘이라도 당장 만나 선거구 획정 협상에 나서야 한다. ‘2월 말까지만 끝내도 된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판단한다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역 의원 모두 준엄한 국민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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