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13일 담화·연설을 고비로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 관련국들의 접근 방식이 분명해졌다. 결과는 북한 핵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실종되고 정세는 더 불안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핵 문제가 더 나빠지고 한반도·동북아 지역의 갈등은 더 심해질 듯해 걱정된다.
미국이 계속 ‘무시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미국 백악관은 13일(현지시각) ‘북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정연설에서 ‘북한 핵’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존 케리 국무장관도 이날 새해 대외정책 기조를 발표하면서 같은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 정부도 핵 문제를 풀기 위한 ‘주도적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들도 ‘대북 추가 제재를 위한 굳건한 공조’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제까지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이런 접근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제재 속의 핵 문제 악화’라는 패턴이 되풀이되기 쉽다.
동아시아 정세의 뼈대를 이루는 미-중 관계는 악재가 더 쌓이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등 한·미의 미사일방어망 강화 움직임과 미국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비행 등이 계기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언급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즉각 ‘신중한 처리’를 주문했다. 미국이 북한 핵실험을 빌미 삼아 한-미-일 군사협력과 대중 포위망을 강화하려 한다는 중국의 의심은 증폭되고 있다. 남북 관계는 이미 언제든지 국지적 충돌이 생길 수 있는 일상적 갈등 국면으로 들어섰다. 당장은 확성기 방송과 전단 등을 동원한 심리전이 중심이지만 언제 국지적 충돌로 비화할지 모를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주된 원인은 관련국들이 핵 문제 해법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은 데 있다. 미국은 핵 문제가 임계점에 이르지 않는 한 중국을 겨냥한 패권유지에 더 신경을 쓴다. 중국 또한 북한과 크게 얼굴을 붉히기보다 대미 대응과 현상유지에 주력한다. 우리 정부마저 핵 해법 동력 확보는 제쳐두고 막연한 북한 붕괴론을 전제로 대북 제재 강화에만 기댄다. 핵 문제와 무관한 확성기 방송이 부각돼 남북 긴장이 높아지는 일까지 벌어진다.
지금의 구도가 굳어진다면 핵 문제 악화는 물론이고 한반도·동북아 정세도 더 요동칠 수 있다. 늦기 전에 새로운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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