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는 보건복지부 등 보건당국과 삼성서울병원의 사실 은폐와 늑장 대응 탓에 악화했음이 14일 감사원 감사 결과로 재확인됐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째 환자의 감염 사실을 확진일자까지 속여가며 늦게 공개하고, 감염 의심자 명단을 보건소에 바로 알려주지 않아 7일간이나 대응 조처를 지연시키는 등 정부 대응은 말 그대로 총체적 부실과 무능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런 감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이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 이하 중간 관리·실무자 16명의 징계를 요구하는 데 그치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이었던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면죄부를 줬다는 사실이다. 이유도 기가 막힌다. 장관한테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든다. 국민 38명이 목숨을 잃은 중대 사태의 주무부처 장관이 보고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장관으로서 엄청난 과오가 아닌가. 우리나라 장관은 이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해도 상관없는 허수아비 자리란 말인가.
감사원은 또 문 전 장관이 이미 사퇴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난 연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지금도 엄연히 공적인 지위에 있다. 희대의 방역 실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장관이 넉 달 만에 다른 공직에 나아가면서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은 셈이다. 공직자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잠시 퇴임했다가 다른 자리로 복귀하면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니 이래서야 어떻게 책임 행정이 이뤄지겠는가.
문 전 장관이 불명예 퇴진 뒤 자숙하지는 못할망정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공모에 나선 것부터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일었는데, 무난히 이사장에 취임한 데 이어 메르스 감사에서도 면죄부를 받은 걸 보면 정권 차원에서 작심하고 문 전 장관을 밀어주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 목숨보다 문형표 개인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국민의 안전을 중시하는 정부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태다.
청와대가 첫 감염자가 확인된 뒤 13일 만에야 긴급 점검회의를 여는 등 늑장·부실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이번 감사의 허점이다. 핵심을 비켜간 이런 감사로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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