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조석래 효성 회장에게 1300여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죄를 물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조 회장의 맏아들인 조현준 사장에겐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최창영)는 15일 조 회장에 대해 “정상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기업을 운영하지 않고 조세정의를 훼손해 직간접적으로 그 이익을 향유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조 회장이 차명주식을 통해 큰 이득을 챙겼음에도 양도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내지 않고, 회계장부 조작을 통해 10년간 거액의 법인세를 포탈한 죄를 엄하게 물은 것이다.
조 회장은 2014년 1월 탈세 외에 분식회계를 통해 마련한 돈을 국외로 빼돌리고, 개인 소유의 서류상 회사를 통해 회삿돈을 개인채무 변제나 지분 매입에 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 가운데 탈세를 제외한 배임·횡령 혐의엔 무죄가 선고됐다. 효성 쪽은 분식회계와 탈세에 대해서도 외환위기 당시 부실 계열사를 합병하면서 떠안은 부실자산의 정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이라고 항변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세포탈과 분식회계를 수년간 반복한 것은 그룹에 대한 조 회장의 경영권 및 지배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를 이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효성그룹 사례는 부당하게 빼돌린 돈으로 그룹 지배권을 유지·강화하고 이를 승계의 발판으로 삼는 재벌가의 삐뚤어진 관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조 회장은 이번 일 외에도 2001년 비상장회사인 노틸러스효성의 주식을 세 아들에게 액면가의 10%도 안 되는 헐값에 넘긴 의혹이 있다. 그룹 지배권 유지·강화와 지분 승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감시가 소홀한 그룹 내 제2금융권 계열사가 회장 일가의 사금고 노릇을 맡고, 계열사들을 동원해 회장 일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그릇된 짓도 거듭했다.
재벌가의 불투명한 승계 과정과 이에 수반되는 각종 불법행위는 우리 경제를 한순간에 위협할 수 있는 커다란 위험요인이다. 그런 위험이 현실화한 일도 한둘이 아니다. 회삿돈을 쌈짓돈으로, 회사를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 행태 때문에 수많은 임직원의 삶이 휘둘리고 국내외 투자자는 물론 국가경제까지 흔들리는 게 바로 ‘오너 리스크’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세계 10위권이라는 우리 경제 주변에서 떠돌도록 내버려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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