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5일 별세했다. 존재 그 자체로 희망이 되고 버팀목이 되는 우리 시대의 또 한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 허전하지만 또한 감사하다. 삼가 영전에 고개 숙인다.
선생의 삶은 선생을 단련시켰고, 보석 같은 결과물을 세상에 선물했다.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의 야욕을 현실화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뒤를 이은 신군부가 강압 통치 끝에 민주항쟁 앞에 물러설 때까지 꼬박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 기나긴 고통과 억압의 생활을 그는 희망으로 승화시켰다. 분노와 좌절로 가라앉을 수 있었던 하루하루를 성찰과 공부, 깨달음으로 채워 마침내 새 출발의 ‘작은 등불’을 그려냈다. 그런 사색의 결과를 담은 옥중서신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은 깊은 통찰로 새 세상을 향한 소중한 가치들을 제시했다. 그는 시대의 희생자이면서, 시대를 밝힌 지성이다.
선생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에겐 사랑이든 생활이든, 또한 실천이나 인식이든 ‘관계’ 없이는 있을 수 없고 바로 설 수도 없다. 누구도 고립된 불변의 존재일 수 없으며, 수많은 관계 속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주변을 변화시켜 결국 세상을 바꾼다. 깨달음과 공부도 궁극에는 세상을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변화는 기존의 가치를 지킬 뿐인 중심부가 아니라, 자유롭고 새롭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내는 ‘변방’으로부터의 열정에서 비롯한다.
그는 ‘처음처럼’의 결연한 자세로, “한 알의 외로운 석과(씨과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가슴 벅찬 그림”을 그렸다.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내는 변화는 씨과일처럼 소중하게 “사람을 키우는 일”에서 시작되고, 나무가 아닌 숲처럼 함께 더불어 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를 절망케 하는” 이 시대에 “통절한 깨달음”과 “새 출발의 디딤돌”로 삼아야 하는 말이다. 귀한 등불을 켜두고 떠난 선생의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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