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9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계속 국민이 국회로부터 외면당한다면 지금처럼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경제 관련 입법 촉구 1천만명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한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박 대통령은 “오죽하면 이 엄동설한에 경제인과 국민들이 거리로 나섰겠나. 지켜보는 저 역시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서명운동 참여와 해명을 보면서, 도대체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은 누굴 가리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마치 국회가 국민을 외면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무리한 입법을 강요하는 대통령과 국회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이도 대한상의와 전경련 등 기업 중심의 경제단체들이다. 이걸 국민 다수의 자발적인 운동처럼 포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적인 예로 <한국방송>(KBS)의 새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활력제고법 등 경제 법안과 노동 5법의 국회 처리에 ‘공감한다’는 응답(41%)과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41.7%)이 엇비슷했다. 기업들이야 쌍수를 들어 환영하겠지만, 노동자 등 절반의 국민은 이들 법안이 대기업에 특혜를 주고 해고를 손쉽게 만들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한쪽 당사자인 재계의 서명운동에 동참하면서 마치 ‘국민의 뜻’인 양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 눈에는 법안 처리에 공감하지 않는 절반의 국민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이제 기업들의 입법 서명운동은 대통령이 참여하면서 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관제 운동’으로 변질했다. 대통령이 서명에 참여한 만큼 각 부처 장관들도 줄줄이 따라서 서명에 동참할 것이다. 대통령이 진두에 나섰으니 서명운동 주체인 재계는 세를 몰아 ‘1천만명’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숱하게 봤던 ‘관제 운동’의 광풍이 21세기 대한민국을 다시 휩쓸지도 모르겠다. 이게 과연 박 대통령이 원하는 ‘민의의 발산’인가. 박 대통령은 ‘엉뚱한 선동’을 하루빨리 접고 국회와 대화하고 타협해서 입법 문제를 풀기 바란다. 그게 민주국가의 정상적인 국정운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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