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이른바 ‘양대 지침’의 최종안을 전격 발표했다. 한국노총이 19일 ‘9·15 노사정 합의’ 최종 파기와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공식 선언한 지 불과 사흘 만이다.
정부는 법과 판례의 범위 안에서 노사관계의 지침을 만들어 현장에서 맞닥뜨릴 불확실성을 없애자는 취지라고 주장한다. 현행 근로기준법 규정 중 모호하고 추상적인 대목이 꽤 있어, 그 해석을 둘러싸고 분쟁이 빈번했던 건 사실이다. 정부 말 그대로 기준과 절차를 엄격하게 만들어 노사관계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된다면야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정부의 최종안은 정부가 내세우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예상대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알맹이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최종안은 ‘업무 능력의 결여’를 해고 사유의 하나로 명시해, 징계해고와 정리해고에 이어 저성과자 해고라는 또 하나의 해고 카드를 기업들 손에 확실하게 쥐여줬다. 또 ‘사회통념상 타당성’이라는 명분만 지닌다면, 설령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도록 했다.
문제는 제아무리 지침을 만들더라도 분쟁의 소지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속력이 없는 행정지침이라 설령 기업이 지키지 않아도 그만일뿐더러, 어차피 분쟁을 해결하려면 오랜 법적 다툼을 거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양대 지침을 밀어붙이는 데만 매달려 노동계의 불신을 자초하고 노사정 합의가 파탄에 이르기까지 불씨를 키우기만 했다.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던 합의를 무시하고 지난해 12월30일 초안을 불쑥 공개하더니, 지난 20일엔 노조원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노사 간담회를 열었다고 보도자료를 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애초부터 대화의 뜻이 있었는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속전속결 행보는 노사정 합의 파기를 핑계 삼아 제 입맛대로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노동계는 강력 반발하고 나섰고, 노-정의 극한 대립은 불 보듯 뻔하다. 때마침 이날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탄생한 지 꼭 26년이 되는 날이다. 주말 분위기에 들뜬 금요일 오후 도망치듯 정부안을 내놓는 옹졸한 행태야말로,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개혁’이 경제를 활성화하기는커녕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만을 강요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