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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시대착오적 ‘애국심’으로 공무원 옥죄겠다는 건가

등록 2016-01-26 18:49수정 2016-01-26 18:49

국무회의는 26일 직무 중심의 인사관리, 성과관리 체계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공무원법 일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우리 공직사회가 비능률과 복지부동의 오명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갖춘 창의적 조직으로 거듭날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법 개정 내용 중에서 유독 눈에 걸리는 대목이 있다. ‘공무원이 준수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공직 가치’라는 것을 신설하면서 맨 앞에 ‘애국심’을 내세운 점이다.

애국심(나라 사랑)처럼 평범하면서도 논쟁적인 단어도 흔치 않다. 그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떤 사랑을 뜻하는지를 놓고 학문적으로도 숱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애국심 내지 애국주의에 대한 비판론의 핵심은 그것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지니며 개인적 자율성을 억압하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국 사회가 겪은 경험적 현실은 이를 생생히 웅변한다. 국가도 아닌 ‘정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했다. 현 정부 들어 과거의 전체주의 망령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법률에까지 등장한 것은 심각하게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은 이미 현실로 입증됐다. 지난해 10월 5급 공무원 공채 면접시험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니 ‘원전 문제 갈등조장 세력’이니 하는 ‘사상 검증’ 질문이 공직 가치 평가라는 이름으로 제시됐다. 앞선 9급 세무직 공무원 시험에서는 ‘애국가 4절 부르기’ 따위의 문제까지 등장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가에서는 발 빠르게 ‘애국심 면접 대비 강좌’를 개설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공무원의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심을 숨기는 법부터 가르치는 공무원 조직이 과연 국민의 공복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답답할 뿐이다.

정부의 ‘위험한 이데올로기’는 애초 입법예고 때와는 달리 공직 가치에서 애국심·책임성·청렴성만 남기고 민주성·다양성 등 다른 가치들을 모두 삭제해버린 데서도 확인된다. 애국심이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존재하는 차이와 다양성,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가치라는 학문적 비판론을 생각해보면 왜 정부가 그런 가치들을 빼버렸는지는 자명하다. 공무원 선발에서부터 승진·보직 인사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애국심을 내세워 통제하겠다는 속셈이다. 정부의 잘못된 기도를 국회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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