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김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 무렵) 우리 당내 많은 의원이 반대했는데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자 반대하던 의원들이 모두 다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지칭한 권력자는 그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 대통령이다.
김 대표 발언이 실언인지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선진화법 개정을 놓고 벌어지는 소동의 한 단면을 여기서 확인할 수는 있다. 4년 전 총선에선 이 법을 내세워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했다가, 집권 이후엔 얼굴을 싹 바꾸고 오히려 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가 됐다면서 입법부를 맹비난하는 박 대통령의 이중성이다. 박 대통령은 정부·여당의 일방적 법 추진이 어려워진 걸 비난하기 전에, 4년 전 선진화법을 주도했던 배경을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입법 배경은 명료하다. 다수당의 법안 날치기와 이를 막으려는 소수당의 극한투쟁에 입법부는 ‘폭력 국회’라는 오명을 벗을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 권위는 추락했고, 그렇게 날치기 통과된 법률은 사회 갈등을 더 심화시켰다는 반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마치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양 국회만 맹비난하고 있으니 이처럼 무책임한 처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김무성 대표 발언은 대통령의 이중성에 대한 여당 내부의 불만과 비판을 반영하는 게 아니겠는가.
새누리당은 대통령 뜻을 좇아 온갖 편법과 강압적 수단을 다 쓰며 선진화법 개정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나름의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그마저도 걷어차 버렸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이 ‘망국병’이라 주장하는 선진화법의 핵심은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법안을 충실히 심사해 입법하라는 것이다. 형식은 다르지만 미국 상원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와 정신은 똑같다. 필리버스터라고 왜 논란이 없으랴마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기에 미국 의회는 오랫동안 이를 유지해온 것이다.
국회선진화법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국회를, 또는 여당이 야당을 설득하려 노력하진 않고 무조건 다수결로 모든 법안을 처리하면 그로 인한 국회 파행과 사회 갈등은 어찌할 것인가. 손쉽게 제도 자체를 바꾸려 하기보다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게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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