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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죽고 싶다’는 말을 흘려듣는 사회

등록 2016-01-27 20:02

자살하는 사람들 90%가 자살 전에 주위에 경고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뜬금없이 “내가 없으면 당신은 뭐 먹고 살래” “천국은 어떤 곳일까” “그동안 고마웠어” 등 이별과 사후세계에 대해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불면증, 체중 변화 등 신체적 징후와 재산 정리, 급격한 감정 변화 등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최근 4년여간 자살한 121명의 ‘심리부검’을 통해 얻은 결과다.

유가족의 81%가 이런 징후의 의미를 미리 깨닫지 못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고 관련 교육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비극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노력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라는 수치스러운 기록을 11년째 이어가고 있지만, 그동안 정부는 충분히 경각심을 갖지 않았다. 핀란드에서는 30년 전인 1987년 심리부검을 도입하고 국가 차원의 자살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가 이번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달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하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제라도 국가적 역량을 모아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번 심리부검에서 자살자의 73.6%가 실직·이직 등 ‘직업 스트레스’를 겪었다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고용 불안정이 커진데다 사회안전망도 허술한 탓에 이들은 더욱 불안한 처지에 빠졌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세심한 제도는 더더욱 미비하다.

과거보다 경제적 지표로는 훨씬 잘살게 됐는데도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보인다는 건 분명 모순된 현상이자 구조적인 문제다. 주위를 둘러보면 “죽고 싶다” “죽을 지경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경고신호를 알아채기가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봄으로써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복지, 노동, 의료, 교육 등 각 방면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이 효율과 경쟁의 뒷전으로 밀려나는 사회에서는 누구든 스스로 해결 못 할 곤경에 몰리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절망을 겪을 수 있다. 자살은 바로 그런 사회가 드러내는 병적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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