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발생한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미국인 아서 패터슨에게 29일 징역 20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범행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고인에게 법이 허용하는 최고형이 내려진 것이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놀이 삼아 잔인하게 죽인 ‘쾌락 살인’에 대한 응분의 처벌이다.
법원이 밝힌 대로 증거와 정황은 진작부터 패터슨을 가리키고 있었다. 피해자·진범·목격자만 있던 좁은 화장실에서 살인이 벌어졌고, 함께 있던 에드워드 리는 상의에 약간의 피가 묻어 있던 반면에 패터슨은 머리와 양손, 상하의가 피범벅이었다. 패터슨이 사건 직후 손을 씻고 범행에 사용된 칼을 버린 점 등 여러 정황을 보면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리의 진술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게 사리에 맞는다.
그런데도 19년 전의 검찰은 진범과 목격자를 뒤바꿨다. 부검의의 의견 가운데 범인의 키가 피해자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는 한마디와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맹신한 탓이다. 거짓말탐지기의 정확성이 97%라지만 단 1%의 오차로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면 독립적인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 검사방법이나 기계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정황증거로만 제한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를 범인을 바꾼 결정적 이유로 삼은 것은 당시 검찰의 결정적 실수다. 다른 증거와 정황들이 대부분 패터슨 쪽으로 향하고 초동수사를 맡은 주한미군범죄수사대가 패터슨의 혐의 사실을 확인해 넘겼는데도, 한국 검찰은 이를 뒤집었다. 이해할 수 없는 헛발질 수사였다.
검찰의 오류를 당시의 1·2심 법원이 바로잡지 못한 것도 문제다. 당시 1·2심 법원은 진범과 목격자를 뒤바꾼 검찰의 잘못된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 진범인 패터슨에게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가벼운 형만 선고했다. 제대로 사실을 살펴보고 재판했는지 의아하다.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한 대법원이 다시 심리하라고 원심을 파기환송하지 않았다면 진상은 영원히 가려졌을 것이다. 단순 살인사건의 범인조차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3류 국가’라는 놀림을 범인으로부터 받을 만도 했다.
잘못된 수사와 기소, 허술한 재판은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더 깊게 할 뿐 아니라 정의의 실현을 방해해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킨다. 이번과 같은 일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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