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인 1999년 2월6일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벌어진 강도살인 사건의 진범이 나타났다. 사건 뒤 기소돼 4∼6년의 실형을 산 당시 스무살 안팎의 ‘삼례 3인조’가 아니라, 30대 초반이던 ‘부산 3인조’다. 진범 중 한 사람은 삼례의 세 사람 앞에서 자신이 진짜 범인이라고 털어놓고, 피해자의 무덤을 찾아 용서를 구했다.
공소시효가 지난 지금에라도 진실이 밝혀진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당사자들의 뒤틀린 삶은 무엇으로도 온전히 보상할 수 없다. 죄책감에 허덕였을 진범들에게도 지난 세월은 지옥 같았을 것이다. 그런 고통을 안긴 책임은 경찰, 검찰, 법원에 있다.
우리 사법시스템이 허위자백과 오판에 취약하다는 점은 이번 사건으로 분명히 드러났다. 완주경찰서는 동네 우범자 가운데 세 사람을 지목해 밤새 구타하고 압박을 가했다. 경찰은 이 중 한글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자술서를 토대로 세 명을 구속했다. 범인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는 증언이나, 진범을 안다는 제보 등도 다 무시했다. 허위자백으로 범인을 만드는 방식이 바로 이렇다. 청소년이나 지능이 낮은 사람 등 압박에 약한 이들이 쉽게 굴복해 허위자백을 하면 이를 발판 삼아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가르친’ 뒤 조서를 만들고 현장검증을 벌인다.
검찰은 이를 걸러내기는커녕 한술 더 떴다. 부산지검이 부산 3인조로부터 자백을 받고 나라슈퍼에서 도난당한 패물까지 확인해 전주지검에 넘겼지만, 어이없게도 전주지검은 무혐의 처리했다. 이미 삼례 3인조가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여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기를 꺼린 탓이겠다.
법원도 허위자백으로 만들어진 증거를 그저 받아들여 줄줄이 유죄 판결을 한 데 이어, 진범이 드러난 뒤의 재심 청구까지 검찰 판단이 이미 내려졌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했다. 허위자백까지 증거로 쉽게 인정하는 안이한 자세 탓에 오판을 끝내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법원은 이제라도 삼례 3인조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일의 책임도 하나하나 따질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고 비슷한 일이 없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만큼, 허위자백이 만들어지고 증거로 제출되는 잘못을 막는 안전장치를 형사사법제도의 단계마다 갖추는 일도 시급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