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미국의 핵심 전략무기를 동원한 무력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한반도 주변이 미국 전략무기의 전시장이 된 모양새다. 한·미 동맹의 위력을 과시해 북한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협의와도 맞물려 부작용이 만만찮다. 동북아 정세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절제하는 대응’이 요구된다.
한반도 상공에 17일 출동한 4대의 미국 F-22 랩터는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로 꼽힌다. 이 전투기는 적국 상공으로 몰래 들어가 핵 폭격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지난달 핵실험 직후엔 미국의 B-52 장거리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에 출동했고, 지난 주말에는 핵 추진 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동해에서 훈련했다. 다음달 한·미 연합훈련 때 핵 항공모함과 스텔스 상륙함까지 오면 미국의 주요 전략무기가 모두 한반도에 출동하는 게 된다. 전시가 아닌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중국이 경계심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미국 전략무기가 잠재적 공격 대상인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와 위력을 과시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가 16일 F-22 전투기 출동과 관련해 “한반도의 국면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하다”고 한 것은 강한 경계심의 표현이다. 관영 언론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동북아 방향에 군사 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중국은 이런 무력시위가 사드 배치 협의 및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움직임과 동시에 이뤄지는 데 주목한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을 겨냥해 사실상 동북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만들려 한다고 의심한다. 어쨌든 미국 전략무기의 무력시위가 새로운 미-중 갈등의 소재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무력시위가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면 북한은 핵·미사일 역량을 더 강화해야 할 이유로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잖아도 북한은 미국의 위협을 체제 유지의 동력으로 삼아왔다. 본의 아니게 국지전이 벌어지는 사태도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에 기대는 무력시위는 동북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힘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 군사력을 앞세우는 접근 방식이 정착한다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우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기 마련이다.
중국은 한반도에 사드가 들어올 경우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이 파괴될 것으로 보고 군사력 재배치 등 대응에 나설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드가 미-중 군사대결의 열점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미의 군사주의적 접근은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를 강화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구도가 한반도 관련 문제를 푸는 길일 수는 없다. 한·미의 군사력이 약해서 핵·미사일 문제가 지금까지 온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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