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이 재외 국민 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24일까지도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에 ‘경제법안 전에 선거법을 처리하는 데 반대한다’는 뜻을 재차 밝혔기 때문이다. 선거구 공백으로 인한 혼란과 예비후보들의 기회 박탈은 차치하고라도, 이젠 정말 총선이 제날짜에 치러질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쟁점법안 통과를 위해 선거법을 볼모로 잡는 대통령의 무모함이 놀랍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16일 국회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던 중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선거구 획정 통과가 시급하다’고 하자 “국회가 민생법안은 통과시키지 않고 선거구 획정만 통과시킨다면 국민이 이해하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한시가 급한 선거구 획정안부터 먼저 처리하려는 여당 지도부의 의견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국회의 대야 협상 하나하나까지 대통령 승인을 받는 요즘 여당 기류로 보면, 여야 지도부 담판을 통해 늦어도 24일 전에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법을 의결하려던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파견근로자보호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테러방지법에서 여야 이견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바라는 대통령 심정을 이해한다 해도,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총선 준비를 이렇게 내팽개쳐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경제법안이 시급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법안 처리와 선거 실시는 그 의미와 중요성이 전혀 다르다.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고 협상하듯 얘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선거구가 모두 사라진 입법 비상사태가 벌써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전국의 예비후보 수천명이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제한당해 애태우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다른 법안을 이유로 선거구 획정을 미룬다는 건, 민주주의 기초인 선거에 대한 부박하고 위험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여야는 밤을 새워서라도 선거구 획정안에 합의하고, 곧바로 입법해서 모든 선거구가 사라진 불법적 상황을 먼저 종식해야 한다. 경제법안들은 그것대로 협상해서, 타결되는 대로 본회의에서 처리하면 된다. 박 대통령은 여야 협상에 더이상 간섭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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