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산별노조의 산하조직인 지부나 지회가 독자적인 결정을 거쳐 조직 형태를 기업별 노조로 변경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노조의 하부조직에 불과한 지부나 지회의 독자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던 기존 판례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으로, 산별노조를 근간으로 하는 국내 노동운동 판도에 커다란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장과 조합원 등 4명이 발레오전장 노조를 상대로 “기업노조로 전환한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냈던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옛 발레오만도)는 1999년 프랑스 발레오그룹이 만도기계 경주공장을 인수해 세운 자동차부품업체다. 2012년 2월부터 노사 갈등이 불거졌는데, 그해 6월 일부 조합원들이 총회를 소집해 금속노조 산하 발레오만도 지회를 기업별 노조인 발레오전장 노조로 형태 전환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 판결은 회사가 상대하기 껄끄러운 노조를 압박 또는 회유해 산별노조 탈퇴와 기업별 노조 전환을 부추길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발레오만도의 경우만 보더라도, 기업별 노조 전환 과정에 무자비한 노조 파괴 공작으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의혹이 짙다. 전환 결정 석달 전인 그해 3월 회사는 창조컨설팅과 노무 컨설팅 계약을 맺었고, 기업별 노조 전환까지의 시나리오를 담은 창조컨설팅 내부 문서도 나중에 공개됐다.
지부나 지회라 하더라도 민법상의 단체로 봐야 한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근거가 빈약하다. 노조는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의 단결권에 입각해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 이런 특수성을 지니는 조직을 단순히 민법상의 단체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노동법의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드러내줄 뿐이다.
이번 판결이 현행 산별노조 체제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가 산별노조의 틀을 유지해온 배경엔 노조와 회사의 유착 가능성을 뿌리뽑고 산업별 근로조건의 균등화를 이루자는 공감대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제 정부가 밀어붙이는 이른바 ‘노동개혁’ 등 주요 쟁점마다 노동계의 목소리가 더욱 위축될 건 불 보듯 뻔하다. ‘외눈박이’ 사법부의 ‘기울어진’ 판결에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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