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논의를 두고 북한 핵실험 조금 전에 북-미 사이에 비공식 의사 교환이 있었다고 한다. 비록 진전되지는 못했지만 북한 핵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 주목된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도 지난주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을 동시에 추진하는 협상을 벌이자고 제안”한 바 있다.
북-미 접촉이 진지한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을 우선하는 반면 미국은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먼저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태도는 왕이 부장의 제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양쪽의 입장 차이는 크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를 논의하는 상황이어서 당장은 협상이 이뤄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근본적 해법에 대한 고민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대북 제재만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더 강한 제재 조처를 취했으나 이는 거꾸로 북한 정권의 위기의식을 부추겨 새로운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반면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한도 핵·미사일 역량 강화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 체제의 붕괴까지 언급하면서 대북 무력시위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핵심 전략무기가 연이어 한반도에 출동하는가 하면 연례적인 한-미 합동훈련도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인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핵·미사일 문제를 풀기는커녕 한반도의 긴장만 더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너무 깊다는 점이다. 따라서 6자회담이 재개돼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야 한다. 기준이 되는 것은 2005년 합의한 9·19 공동성명이다. 이 성명은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 포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을 아우르고 있다.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협상’과 사실상 같은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공통의 대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를 펴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압박 강화를 통한 북한 체제 변화에 ‘올인’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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