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23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회담을 하고,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긴장이 커지고 있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큰 틀의 의견을 나눴다. 두 장관의 회담은 앞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의 큰 방향을 정한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박근혜 정부의 비전략적이고 맹목적인 강경외교로 인해 이런 과정에서 합당한 존재감을 투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두 장관이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결의안에 대체로 의견 접근을 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왕이 부장은 “협의에 중대한 진전이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도 “이번 결의안이 통과되면 지난 어떤 결의안을 넘어서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해, 북한을 더욱 옥죄는 내용이 될 것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케리 장관이 ‘적절한 제재에 합의’라고 했듯이, 우리 정부가 말하는 ‘끝장 결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둘째, 북한에 대한 제재와 함께 북한을 대화의 마당으로 끌어내기 위한 평화협정 문제도 공식 제기되었다. 왕이 부장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추진을 케리 장관에게 공식 제안했고, 케리 장관도 북한이 일정 기간 비핵화에 동의하면 평화협정을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천명했던 북한 체제 변화 추구의 강경 일변도 노선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다. 주변국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 식의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온 박근혜 외교의 실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것인데, 케리 장관은 중국의 배치 반대 요구에 대해 “비핵화만 되면 배치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은 사드 배치에 급급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충분히 배치를 유보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는 증대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의 자위적 차원의 조치로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라고 장담하던 정부의 설명이 초라해 보인다. 23일 한국에 사드 배치를 논의할 한·미 공동실무단의 약정 체결식이 두 장관의 회담을 앞두고 돌연 연기된 것을 생각하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문제를 섣불리 제기하는 바람에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중 회담 결과에서 보듯이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전략적이지도 실리적이지도 못하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노선을 수정해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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