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위원회가 28일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의 선거구획정안을 국회로 넘김으로써 곧 이 안대로 선거구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본회의 의결 시점이 좀 유동적이지만, 4월13일 치러지는 20대 총선은 어쨌든 이 선거구안에 기초해 치를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거 뒤까지 획정안이 안고 있는 숱한 문제점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20대 국회가 새로 문을 열면, 시한에 쫓겨 원칙과 기준을 포기한 채 졸속으로 만든 현 선거구를 근본적으로 전면 손질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헌재)에서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 편차를 2 대 1로 조정하라고 결정했을 때만 해도, ‘표의 등가성’을 위해 이참에 좀 더 근본적인 선거제도 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선 다양한 계층·집단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 수를 대폭 늘리자는 주장을 폈다. 특정 지역 의석의 독식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여야 모두에서 고루 제기됐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표를 줄이고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 확대를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견해도 나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모든 제안은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바람직스럽지 않은 쪽으로 개악된 부분이 적지 않다. 농어촌 의원들의 반발에 밀려 비례대표를 7석이나 줄인 것이 대표적이다. 매우 자의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선거구를 획정한 사례도 많다. 강원도는 5개 군이 합쳐 서울시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초대형 선거구까지 탄생했다. 인천, 충북, 경기 등에서도 지리적으로 분리된 곳을 하나의 선거구로 묶는 일이 벌어졌다. ‘동일 생활권’에 대한 배려 없이 시간에 쫓겨 정치적 타협을 하면서 벌어진 게리맨더링(기형적 선거구)이다.
총선을 불과 40일 남짓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런 문제를 지금 당장 고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새로 문을 여는 20대 국회에선 꼭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당리당략이 아닌, 국민 뜻을 최대한 정확하게 국회에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구를 다시 개편해야 한다.
앞으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 선거구획정위는 독립기구를 표방했지만 사실상 여야의 원격조종을 받는 ‘대리 기구’에 불과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획정위원을 국회에서 여야가 지명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다음 국회에선 정치권 입김에서 실질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막판엔 또다시 이번처럼 정치권 짬짜미에 의한 게리맨더링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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