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삼성에스디아이가 매각한 삼성물산 주식 200만주, 3060억원어치를 최근 사들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은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그런 회사의 주식을 공익재단이 대거 사들여 이 부회장에게 우호 지분을 확보해준 것이다.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의 정당성에 스스로 흠집을 내는 꼴이다.
삼성에스디아이는 이번에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했는데, 이 가운데 지분 0.82%에 해당하는 130만5천주는 이 부회장이 샀다. 그보다 많은 1.05%의 지분을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사들였다. 삼성 계열 공익법인들은 삼성물산 지분 0.65%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데, 이로써 재단 지분이 1.7%로 늘어나게 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을 17.2% 갖고 있고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하면 39%가량 된다.
공익재단은 계열사 주식 5%까지 상속증여세를 면제받고, 성실공익재단으로 지정되면 10%까지도 면제받는다. 사회공헌 활동을 하라고 그런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과거 이병철 회장에게서 이건희 회장으로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삼성문화재단 등 공익재단을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했다. 지금도 삼성 계열 공익재단은 삼성생명 6.86%를 비롯해 핵심 계열사 지분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어,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팔아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삼성에스디아이가 이번에 주식을 팔아야 했던 이유는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함으로써 새로 순환출자 고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합병 추진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생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과정에서도 공익재단을 동원해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확보했으니, 구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삼성 국내 법인의 등기이사 직위를 처음 맡는 것이어서, 재단을 경영권 승계에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삼성 쪽은 “상속이나 경영권 확보 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이번 일은 그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매입한 지분을 즉시 처분하라는 비판에 삼성과 이 부회장은 답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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