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7돌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 핵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미 모순이 여실히 드러난 기존 정책을 재확인한 수준이어서 한계가 뚜렷하다. 게다가 기념사 내용의 절반가량을 국내 정치 문제에 할애해 3·1절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3·1절은 온 국민이 맨주먹으로 일제의 총칼에 맞선 ‘3·1 혁명’을 기념하는 날이다. 일본 우익세력이 과거 잘못을 부인하는 움직임을 강화하는데다 일제 잔재 청산도 마무리하지 못한 터여서 3·1절의 의미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그것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12·28 합의를 옹호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합의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알 수 있다. 일본의 태도는 거의 바뀐 게 없는데도 우리 정부만 스스로 입을 막은 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핵 문제에 대해 “기존의 대응방식으로는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꺾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며 개성공단 폐쇄 등의 강경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건지, 또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등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내용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제조건으로 달기는 했으나 북한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주도해 밀어붙인 ‘강경 독주 외교’의 모순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해법 모색의 여지를 남긴 모양새다. 이런 움직임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우리나라가 앞장서서 미국과 북한 등을 설득해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의 궁극적 해법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언급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강한 이른바 통일대박론의 재판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를 보더라도 통일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없는 통일대박론은 통일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들어 대북·대일본·대중국 외교에서 모두 실패하고 있다. 그 결과 더 불안해진 한반도 정세 속에서 우리의 국제적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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