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2일 밤 야당이 9일 동안 계속해온 필리버스터를 중단하자 새누리당 의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테러방지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가정보원은 ‘테러 방지’라는이유만으로 국민의 개인정보를 낱낱이 손에 넣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게 됐다. 국민 기본권 유린의 긴 역사를 걸어온 국정원이 이제는 대명천지에 인권유린을 자행할 수 있는 면허증까지 손에 넣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상 이제는 이 악법을 폐기하는 일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폐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독소조항이라도 없애 국민의 불안감을 씻어주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은 결국 국민에게서 나온다. 이성과 상식을 저버린 집권여당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권자의 힘밖에 없다는 사실도 더욱 분명해졌다. 문제는 지금의 정치 현실이 이런 꿈을 꾸는 것마저 용납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는 “4·13 총선에서 야당이 국회를 지배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면 테러방지법의 인권 유린 가능성을 제거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말은 정치적 수사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 야권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테러방지법 수정은커녕 집권 세력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손가락질은 집권여당이 아니라 오히려 야당으로 향한다. 과연 야당은 ‘필리버스터 이후’를 대비해 왔는가.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확인된 민심의 열기를 투표장으로 이끌어 그들의 분노와 염원을 표로 연결할 비책은 있는가. 모든 점에서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김종인 대표는 2일 야권 통합 제안을 꺼냈다. 필리버스터 중단에 대한 비판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국면 전환 카드라는 느낌도 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즉각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야권 통합은 매우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도 들린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야당이 이제는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열 때라는 점이다. 집권여당을 심판할 수 있는 구조도 만들어놓지 않고 정권심판론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지쳤다. ‘필리버스터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 지금 야권에 가장 필요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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