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굴욕적인 12·28 합의를 반성하고 바로잡기는커녕 위안부 문제 자체를 ‘말살’하려는 행태다.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가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일(현지시각) 3600자 분량의 연설을 하면서도 위안부라는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우회적으로 기술하는 표현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유엔 연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양자적 측면보다 전시 여성 성폭력이라는 다자 구도적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변명했지만, 이런 논리 자체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쪽 주장과 동일하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도 3·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12·28 합의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최근 나온 초등학교 6학년 국정 사회(역사) 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기술도 축소됐다.
12·28 합의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전혀 묻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최악의 ‘외교 담합’이다. 그 배경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와 맞물려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간단하게 말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안보협력을 하려고 위안부 문제를 내팽개친 꼴이다. 이달 말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려 위안부 문제 종결을 다시 못박을 거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역사 정의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가해자인 일본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피해자가 자신의 문제를 풀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남들에게 인권을 얘기해서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갈수록 커질 이런 모순에서 벗어날 길은 어렵지 않다. 12·28 합의 족쇄를 풀고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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