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제안으로 불붙은 ‘야권 통합’ 논의가 통합의 한 축인 국민의당 내부 갈등으로 번지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3일 김 대표의 제안을 “국면전환용이자 비겁한 정치공작”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혼자라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자세로 보인다.
총선이 불과 4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갈라선 야당이 다시 합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또 바람직한지를 지금 따질 계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통합이든 연대든 또는 각자도생이든 그 결정 배경엔 당리당략이 아닌 지지자의 열망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야권 통합’에 관한 국민의당 내부의 다양한 반응엔 이 사안을 바라보는 곤혹스러움이 진하게 묻어 있다. 제3의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제1야당을 뛰쳐나온 게 불과 두어 달 전인데,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다시 돌아가자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지적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엔 안철수 대표 자신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입으론 새정치를 외치면서 현역 의원을 무차별 영입해 몸집을 불렸고, 호남 지역정서에만 기대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애쓴 게 바로 안 대표와 국민의당이었다. 지금 겪는 내홍은 가치와 원칙 없이 잘못된 행보를 해온 데 따른 결과라 해도 틀리지 않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의 통합 제안이 그런 국민의당을 흔들려는 정치적 계략이라는 안철수 대표의 비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 제안에 깔린 정략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국민과 야당 지지자들의 바람이다. 더민주의 통합 공세가 국민의당을 뒤흔드는 가장 큰 이유는, 야권 통합 또는 연대가 지지자들의 뜨거운 열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의 필리버스터 저항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어제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단독 처리했다. 4·13 총선이 끝나면 노동 4법을 비롯한 각종 논란 법안들 역시 청와대와 새누리당 뜻대로 국회를 통과할 것이다. 선거란 기본적으로 집권세력의 국정운영과 잘잘못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띤다. 수많은 국민은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제대로 견제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야당의 잘못과 분열로 인해 정권 평가라는 선거의 본질이 희석되어 버리고 오히려 야당을 평가하는 형국이 된다면 이런 허망하고 절망적인 상황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금 야권 내부에서 통합 또는 연대의 움직임이 강하게 이는 건 바로 이런 야권 지지자들의 간절한 소망이 반영된 측면이 크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야권 통합 또는 연대 움직임을 단순한 정치공학이나 당리당략으로만 몰아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이뤄질 수 있도록 선거구도가 짜이는 건 국민에게 올바른 정치적 선택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제3의 정치세력의 필요성과 시기적 급박성을 인정하더라도, 총선이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분명하게 띨 수 있도록 최소한 수도권만이라도 선거 연대를 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야권 통합 또는 연대 문제를 개인 주도권이 아니라 정권 견제 차원에서 바라보고 행동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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