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의 증손자인 박정원 회장이 이달 말부터 그룹 지주회사인 ㈜두산의 이사회 의장을 맡아, 박용만 현 회장한테서 그룹 회장직을 넘겨받는다. 국내 재벌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4세 경영 체제가 출범하는 것이다. 설마 4세까지 승계하겠느냐는 일부의 시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산그룹은 창업자의 아들인 박두병 초대 회장의 뜻에 따라 그동안 3세 ‘용’자 돌림 형제들이 그룹 회장을 맡아왔다. 장남인 박용곤 회장을 시작으로 5남인 현 박용만 회장까지 형제 가운데 4명이 맡은 뒤, 이번에 장남의 맏아들에게 자리를 넘기는 것이다.
대주주 가문의 경영권 승계가 두산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관행이라고 해서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창업자의 후손에게 대대손손 뛰어난 경영능력이 유전되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최근 두산그룹이 겪고 있는 위기도 현 박용만 회장이 기획조정실장 시절 소비재 산업에서 중공업으로 주력을 바꾼 데 뿌리를 두고 있다. 두산에 큰 어려움을 안긴 2007년 미국 건설장비 회사 밥캣 인수를 비롯해 많은 기업 인수합병을 그가 지휘했다.
두산에서도 과거 경영권 승계를 놓고 형제간 분쟁이 있었다. 2005년 3남인 박용성 회장이 추대됐을 때, 차남이 오너가의 비리를 검찰에 진정해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일에 견줘 이번 승계를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안이하다. 새로 그룹 경영을 맡을 박정원 회장의 경영능력을 예단하거나 깎아내릴 뜻은 전혀 없다. 다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처한 혹독한 환경을 가볍게 본 선택은 아니길 바란다.
두산이 4세 체제의 닻을 올렸으니 이제 다른 재벌 그룹들도 4세 승계에 큰 부담을 갖지 않을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의 계기를 찾지 못한 채 좀 더 표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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