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통신자료를 대량으로 엿본 수사기관들이 그 이유조차 알려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자신의 통신자료가 국가정보원·검찰·경찰에 제공된 것을 안 <한겨레> 기자들이 통신자료 요청 이유를 문의하자, 이들 기관은 입을 맞춘 듯 “이유를 알려줘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통신사들도 눈치를 보는지 수사기관의 ‘자료제공요청서’ 내용 공개를 꺼렸다.
수사기관의 개인 통신자료 수집이 정당한 목적에서라면 그 이유를 밝히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이 법원의 영장이나 당사자에 대한 통보 없이도 개인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것부터가 일종의 입법 잘못일 것이다. 국가권력이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면 최소한의 통제장치는 당연하다. 침해되는 정보가 크든 작든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이는 개인의 기본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법적 통제건 당사자 통보건 생략하겠다면 국가권력이 무슨 일을 더 저지를지 감시할 도리가 없다. 간단한 인적사항 등 사소한 것일 뿐이니 정보 수집 사실을 알 필요도 없고 이유도 묻지 말라면, 국가권력이 견제나 통제 없이 제멋대로 감시의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사기관들은 정보 수집 사유의 공개를 거부하는 이유로 수사상 필요나 국가안보 등을 내세우지만, 그런 경우에도 기존의 다른 법에는 당사자에 대한 사후 통보가 의무화돼 있는 터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일명 FIU법)의 경우, 금융거래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면 열흘 안에 당사자에게 문서로 ‘제공 정보의 내용, 사용 목적, 제공받은 자’ 등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수사나 조사 등의 이유로 늦추더라도 6개월 이내, 더 늦춰도 최대 1년 안에는 통보해야 한다. 개인 통신자료 역시 그렇게 통보하고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관련 법에 통보 절차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법을 개정하거나 사회적 합의로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바로잡는 법 개정은 국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한술 더 떠, 지금보다 더 쉽게 수사기관이 통신자료와 정보를 그러모을 수 있게 하는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 등을 추진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을 더 촘촘히 감시하려는 게 아닌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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