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4일 “당 정체성과 관련해 심하게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은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 발언은 사실상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역 의원 지역구로 공천 미확정 지역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당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란 곧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사람’을 가리킨다고 많은 이들은 보고 있다. 이런 식의 공천이 현실화한다면 새누리당을 과연 ‘민주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이한구 위원장이 말하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여당 의원으로서 정부 정책 기조를 비판하면 당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청와대 지시에 따르지 않고 국회에서 야당과 협상을 하면 당 정체성을 짓밟는 것인가. 그러나 행정부를 비판·견제하는 건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의 기본 책무다. 국회 운영 역시 당이 주도적으로 하는 게 맞고, 오히려 청와대가 시시콜콜 국회에 개입하는 게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 당헌당규에 따라 행동한 의원을 단지 대통령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한다면, 그런 정당은 당원과 지지자의 뜻에 기반한 민주 정당이라 할 수 없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지역 구민의 지지가 높은 유승민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한다면, 그 이유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유 의원을 콕 집어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말했다. 며칠 전엔 선거개입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 의원 지역구인 대구 동구를 방문했다. 당원과 지역민의 신뢰를 받는 국회의원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이 이렇게 애쓰는 걸 바라보는 국민 심정은 지지 정당을 떠나 어이가 없고 참담하다.
정치적 파장을 줄이기 위해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인천 남구을)과 함께 유승민 의원을 컷오프(경선 배제)시킬 것이란 전망도 정치권에선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당 대표에게 막말을 한 국회의원과, 소신을 지킨 국회의원을 어찌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런 꼼수야말로 당원과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협잡이다. 이한구 위원장은 이제라도 공천 심사를 공정하게 하길 바란다. 이 위원장이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권력자인 대통령이 아니라 당원과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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