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펼친 다섯 차례 대국이 모두 끝났다. 지난 일주일 사이 우리들은 인간의 직관과 추론 능력을 쏙 빼닮은 알파고의 위력에 충격을 금치 못했고, 동시에 포기를 모르는 투혼으로 알파고를 한 차례 무릎 꿇린 인간의 의지에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눈앞에서 지켜본 인공지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잉 열풍도, 과잉 불안도 모두 적절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은 위협적이었으되, 아직은 한계 또한 분명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기계학습(머신러닝) 방식을 따르다 보니, 스스로 학습한 적이 없는 돌발상황과 맞닥뜨렸을 땐 어이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바둑과 같은 두뇌게임이 아니라 무인자동차나 의료 등 일상생활 분야에 곧장 적용됐더라면 치명적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앞길이 아직은 꽤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알파고와 함께한 일주일은 우리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줬다. 아프지만 값진 시간이라 할 만하다. 인공지능 분야란 첨단 과학기술이 한데 집약된 대표적인 융복합의 영역이자 자연과학·인문학·공학·의학 등을 두루 아우르는 연구개발 능력의 결정판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는 인내의 시간과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쉽사리 넘보기도 따라가기도 힘들다. 떠들썩한 세기의 대결이 결국 구글의 잔치로 끝나버린 건, ‘구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모방과 실행에만 매달려온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해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단기적 효과의 가능성 위주로 인적·물적 자원을 배분해온 ‘추격자’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종합적인 인공지능 육성방안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형태의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 움직임도 있다. 미래 인류 문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사업을 번갯불에 콩 볶듯 밀어붙이는 태도도 문제거니와, 정부가 결정하고 기업들은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행태는 여러모로 볼썽사납다. 창조경제 한답시고 전국 17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워 사실상 기업에 할당하는 구닥다리 경제의 판박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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