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일 입법예고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 시행령’이 재벌에 의한 원샷법 악용을 사전에 막을 통제장치를 대폭 없애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관심이 집중된 법령에선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척하다가 정작 시행령으로 슬그머니 빗장을 풀어주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꼼수다.
2월4일 국회를 통과한 원샷법은 공급과잉 산업에 속한 잠재적 부실기업이 생산성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합병·분할·양수도 등의 사업구조 재편을 추진할 경우,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의 규제를 대폭 간소화하고 세금 감면 등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몸집이 작은 회사와 합병할 때 주주총회 대신 이사회에서 결정할 수 있는 요건을 발행주식 총수의 10%에서 20%로 완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와 삼성에스디에스(SDS)의 합병 절차는 한결 단순해진다. 삼성에스디에스의 지분 9.2%를 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선 지분 교환을 통해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손쉽게 강화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우려가 끊이지 않자,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사업구조 재편이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강화, 계열사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사업구조 재편계획 심의위원회가 이를 승인하지 못하게끔 의무화하고, 심의위원회 활동의 주요 내용을 투명하게 공표하도록 하는 등의 통제장치가 마련됐다. 재벌이 선제적 구조조정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법을 악용할 여지를 미리 없애려는 안전판이다. 하지만 이번에 입법예고된 시행령은 심의위원회의 승인 금지 요건을 지나치게 축소 적용하거나 공표 항목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어, 애초의 통제장치가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정부는 원샷법이 경제살리기에 반드시 필요하며 재벌 특혜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오랜 공방 끝에 원샷법이 국회 문턱을 어렵사리 넘어서게 된 건,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발 빠른 구조조정이 필요하며 통제장치를 통해 재벌들이 다른 목적으로 법을 악용할 여지는 거의 사라졌다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시행령에서 안전판을 제거해버린 정부의 행태는 원샷법의 ‘숨은 의도’를 정부 스스로 폭로해준 제 얼굴에 침 뱉기 식 꼼수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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